꽃이 사라져가는 겨울의 초입이다.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이제 산길을 걸으며, 냇가를 걸으며 혹시 남아있을 꽃과 예쁜 열매를 찾는 일이 남은 기쁨이다.
이마저도 며칠 지나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터이다.
오랫만에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망원렌즈를 필히 지참하라시는데 망원이 없는 나, 한참을 망설인다.
하지만 바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꽃(열매)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목적이지 찍는 것이 목적이 아니건만 무슨 바보같은 망설임일까?
밖은 바람이 불고 찬 날씨였지만 차 안은 따뜻하기만 하다.
하늘도 새파랗다. 미세먼지에 질린 마음은 파란 하늘만 보아도 행복하다.
역시 행복은 부족함을 경험한 후에야 커지는 요물이다. ㅋ
가파른 산길에 차를 세우고 꼬리겨우살이를 본다.
역광에 투명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구슬들...멀리 있으나 아름다움은 또렷하다.
꽃을 찍는 사람에게는 망원렌즈가 필수라는 조언을 듣는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진을 제대로 배운 적도 없고, 아직까지 서툴기만한데 렌즈 타령을 하는 게 남몰래 부끄러워서 장만하지 않았다.
먼저 지식와 가술을 익힌 후에 장만하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그분들의 충고대로 일단 장만한 후에 계속 찍어보아야 사진이 나아지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어쨋거나 진심어린 충고는 가슴 안쪽 주머니 속에 잘 접어두기로 한다.
꼬리겨우살이는 겨울이면 잎을 다 떨구는 낙엽성 떨기나무라서 상록 떨기나무인 겨우살이와는 확연히 구분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寄住 나무들의 잎이 다 진 후라서 꼬리겨우살이의 열매는 겨울빛 속에서 홀로 반찍였다.
구슬, 보석이라는 표현은 너무 식상하다. 그래도 그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다른 산길로 접어 든 후 이번에는 너덜지대로 들어선다.
미처 예측하지 못해서 배닝 대신 옆가방을 준비했던 나는 한껏 비칠거리며 돌 틈을 기어간다.
제길, 하필이면 얌전히 잘 있던 카메라를 옮겨가면서까지 삽질이었담? 쯧쯧...
자꾸 뒤쳐지는 것 같아 같이 간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꼬리겨우살이 열매들이 땅에 떨어져 흩어져 있는 것을 보니 이미 채취꾼들이 다녀간 모양이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일은 쉽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나름대로의 이유를, 때로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철이 들면 쉽게 남을 비난하지 못한다.
내게는 感想의 대상일 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과 맞서는 무기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수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겨우살이도 인간에 의한 대량살상에 대항해 살아남기 위해서 다른 방법을 모색 중일 것이다.
그것이 환경과의 싸움이고, 진화의 험난한 길이다.
어쨋든 개체수는 많이 줄어들었다지만 다행히 남은 꼬리겨우살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찍기에는 난해하다. 물론 핑계 같지만 내 렌즈의 한계도 있고...
바닥에 떨어진 열매들을 끌어모아 놀이를 해본다.
제대로 예쁘다. 미치게 예쁘다. 난 이것으로 됐다!
꼬리겨우살이는 열매가 꼬리처럼 늘어져 달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같은 기생식물이지만 겨우살이가 상록성이라서 일년 내내 초록잎을 달고 광합성을 할 수 있는데 비해 (반기생),
꼬리겨우살이는 겨울이면 잎이 다 떨어지므로 다른 계절에는 반기생 생활을 하지만, 겨울에는 완전 기생을 할 수 밖에는 없다.
다른 나무에 뿌리 (정확하게는 吸器, haustoria)를 내리고 그 나무의 물과 양분을 빼앗아 살아가므로 기생 식물이다.
자연의 세계에 '좋다' 또는 '나쁘다'와 같은 극히 인간적인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일부는 우리가 알게 되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그냥 받아들인다.
항암 효과가 크다고 대량 채취의 대상이 된 것도 그들의 운명이다.
그들이 살고 있는 생태계의 조건이 크게 바뀐 것이니 그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도 사실은 그들의 일이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멸종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생존하고 있는 생물들보다 훨씬 더 두꺼운 멸종 생물들의 족보...
단지 달라진 것은 생태계의 조건을 크게 좌우하게 된 것이 호모 싸피엔스라는 일개 種. 생명의 역사에서 이제 막 등장한 늦둥이 種이라는 사실일 뿐.
대량 채취를 두둔하거나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35억년 생명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아직 5백만년도 살지 못한 인간들은 겸손해져야 한다.
해야 할일을 찾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윤리적 책무일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세계에서의 윤리적 지침이 무슨 힘이 있을 것인가? 미안하다. 그 점에서 나는 비관론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마도 꼬리겨우살이도 지금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고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일 것이라는 사실이다.
치열하게, 온 힘을 다해, 자신들의 유전자가 남겨준 생존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처럼 보석같은 열매를 계속 보여주면 좋겠다.
나만이 아니라 내 후대의 사람들도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려오다가 색이 너무도 고운 노박덩굴을 본다. 세상은 아직 참 멋지다.
이제 겨우살이를 담으로 다시 길을 나서야 할 시간이다.
바람이 점점 거세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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