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경우 아름다움의 대상은 구체적인 사람이나 사물, 존재이지만 때로는 어떤 상황이나 관계에서도 우리는 아름다움을 본다. 그 상황이나 관계가 결코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대상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경우에 조차도 말이다.
아름다움이 시대나 지역적 특성에 따라 달라진다고 알고 있지만 어차피 100년도 못되는 시간을 살다 사라지는 나 같은 평범한 인간에게는 별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아름다움에는 힘이 있다. 사람들을 잡아끌어 매료시키고 포로로 만드는 강력한 힘.
대부분의 꽃들은 참 아름답다.
얼핏 보아 평범하거나 못생겨 보이는 꽃들도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오래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숨겨져 있던 아름다움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맞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 알면 놀랍고 그 후로 오랫동안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오래 보지 않아도,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아름다운 꽃들이 있다. 보는 즉시 매료되는 꽃.
많은 사람들이 보고 싶어 몸살을 앓게 하는 꽃.
그중 하나가 금강초롱꽃인 것 같다.
생긴 모양의 사랑스러움에다 ‘초롱’이라는 물건이 가지는 낭만적인 이미지, 신비함까지 더해진 보랏빛 꽃잎, 게다가 ‘금강’이라는 접두어가 가지는 무게, 한국특산종이라는 귀한 족보까지... 참으로 모든 것을 가진 ‘금수저’ 꽃이다.
이처럼 아름답기에 발견해서 카메라를 들이대면 바로 작품이 될 것만 같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금강초롱꽃이 필 때면 누구나 자신이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고는 행복해진다.
“나 이정도면 참 사진을 잘 찍네!!”라는 흡족함. 나도 그렇다. 바로 그게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존재의 힘인 것이다. 누가 찍어도 아름다운 꽃, 바로 금강초롱꽃이다.
많지는 않지만 내 경험에 의하면 금강초롱꽃은 그것이 피어난 지역에 따라 색깔이 많이 다르고 그 느낌도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곰배령의 그것은 옅은 보랏빛이고 또 개체 수도 워낙 많다보니 좀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비해 화악산의 금강이는 너무도 진한 보랏빛이어서인지 조금 더 고귀해 보인다.
햇살 아래에서 보면 때때로 붉은 색으로도 보인다.
곰배령의 금강이가 수수한 처녀 같다면 화악산의 금강아씨는 귀하디 귀한 양반집의 무남독녀 외동딸 같은 느낌이다.
<곰배령에서>
<화악산에서>
<화악산에서>
<화악산에서>
강원도 모처에는 흰금강초롱꽃도 지천으로 핀다. 흰금강초롱꽃은 꽃잎의 색도 흰색에 가깝지만 무엇보다 꽃대의 색이 초록빛이어서 다른 종으로 분류된다.
많은 종의 꽃에서 흰색의 변종이 발견되기는 하지만 금강초롱꽃과 흰금강초롱꽃은 종 자체가 다르다는 의미이다.
흰색이 더욱 귀해서인지 흰금강초롱꽃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지는 꽃마다 다른 것이고 개인의 취향 문제가 아닐까한다.
<흰금강초롱꽃>
<흰금강초롱꽃>
<흰금강초롱꽃>
<흰금강초롱꽃>
<흰금강초롱꽃>
나는 단아하고 깔끔한 흰금강초롱꽃도 좋지만 초롱이라는 꽃 이름에 걸맞게 빛을 받아 초롱처럼 환하게 밝아지는 금강초롱꽃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대체로 꽃이름 앞에 地名이 붙어있는 경우는 그 꽃이 처음 발견된 장소일 경우가 많다.
금강초롱꽃은 아마도 금강산에서 처음 발견되었으리라. 봉래꼬리풀도 봉래산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산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을 것이고, 변산바람꽃은 변산반도에서, 동강할미꽃은 동강에서, 제주무엽란은 제주도에서...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인지 이렇게 지명이 꽃이름 앞에 붙어있는 식물들에게는 더욱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 꽃의 학명을 알게 되면 서글퍼진다.
Hanabusaya asiatica (Nakai) Nakai.
명명자도 일본인(나카이 다케노신)이고 그가 이 꽃을 명명하여 헌정한 대상(하나부사 요시모토)도 일본인이다.
꼭 일본인이어서가 아니라 한국특산속의 식물의 학명치고는 이상해도 많이 이상한 일이 아닐까?
식물들의 세계도 인간의 역사나 정치적 상황에서 완전히 비켜갈 수는 없나보다.
이미 말한 것처럼 금강초롱꽃은 한국특산종(고유종)이기도한데 그 의미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식물이라는 뜻이겠다.
달리 표현한다면 우리나라에서 사라진다면 이 지구상에서 멸종하게 된다는 의미를 가진 꽃이다. 우리의 의무가 무겁게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이 꽃을 위해서 해야 할일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생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자연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섣부르게 무언가를 보호한답시고 나서는 일조차도, 길게 본다면 자연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딱딱한 이야기가 길어졌다.
금강초롱꽃을 보면 한밤 중 초롱불을 밝히고 누군가를 마중 나가는 여인이 떠오른다.
초롱이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어둔 밤 은은하게 불 밝히고,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려야만 초롱이 완벽한 초롱일 수 있지 않겠나?
내 맘에도 초롱불 하나를 밝혀두고 싶다.
너무 밝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코 꺼지지도 않을 초롱불 하나...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기다린다는 것이
때로는 고통이 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희망의 징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행히 초롱 속 불빛이 너무 밝지는 않기에 희망이 끝내 고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너무 어두워 길을 잃고 절망에 빠지지 않을 정도의 밝기로 초롱불을 켜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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